Original Story
전체 이야기
이런 나라도 거래하시는군요.
처음입니다. 우리 회사 품목이 소규모로 여러 나라에 판매되는 품목이라서 모르는 나라에서도 오더가 오곤 합니다.
첫 거래였나요?
그렇습니다.
첫 거래였는데 DEPOSIT이나 ADVANCE는 없었나요?
소액이라서 T/T로 바로 송금한다고 해서 보냈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아니, 처음입니다. 당연히 ADVANCE를 요구했는데 물건이 급하다며 바로 송금할 테니 선적해달라고 했습니다. 뭣에 씌웠던 것 같습니다.
꼭 그럴 때 사고가 나죠. 그리고 송금은 하지 않았을 테구요.
네.
뭐라고 하면서 송금하지 않았습니까?
말로는 계속 준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을 보내면 곧 송금한다고 답장하고 전화를 하면 가끔 받다가 요새는 그마저 잘 받지 않고요. 그렇게 시간만 지나고 있습니다. 추심은 가능하겠습니까?
저도 처음입니다. 이 나라에 추심이 가능한 로펌이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아는 변호사와 로펌을 수소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리브해 남쪽 베네수엘라 바로 위에 있는 섬나라.
트리니다드와 토바고라는 두 개의 섬으로 구성돼있고 토바고는 담배의 타바고와 같은 어원이라고 합니다.
전형적인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산업을 했던 곳으로 원주민들은 모두 소멸했고 아프리카계의 흑인노예들의 처절한 피와 눈물이 스민 땅입니다.
노예제도의 폐해와 테일러시스템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나라입니다.
흑인노예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채찍에 맞아가며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했지만 영양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노예들에게는 한두 가지 음식만 주었기 때문에 중노동과 영양부족에 시달려 노예들의 평균수명은 상당히 짧았습니다.
당시 흑인노예들의 평균수명은 현지에 도착해서 약 7년이 평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노예무역이 금지된 이후였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데려올 수 없게 된 농장주들은 인도의 수드라, 불가촉천민 등 최하위 계층의 주민들과 거의 노예계약을 체결하여 데려와 노동력을 보충했습니다.
거의 대부분 문맹이었던 인도인들에게 계약서를 주고 서명하게 하여 노예나 다름없는 계약을 하고 데려와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도인들은 노예와 다름없긴 했지만 노예는 아니었습니다.
인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날씨도 살던 곳과 비슷해서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흑인노예들과 달리 렌틸콩 같은 저렴하고 흔한 식자재로 커리를 만들어 먹는 등 단백질과 비타민을 나름 잘 보충했기 때문에 중노동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버텨냈습니다.
또한 이들은 노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자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시아 각 나라에서 제국주의의 피해로 노예처럼 실려 온 사람들은, 채찍에 맞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하는 흑인노예들과는 생산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그 생산성 차이에 따른 생산단가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브라질 등의 나라에서는 사탕수수 농장을 포기하고 커피농사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브라질이 커피로 유명하게 된 이유에는 뜻밖에도 아시아인들의 피눈물이 깔려있었습니다.
그 아픔에는 애니깽으로 대표되는 우리 선배들의 모습도 섞여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국의 로펌에서 추심하겠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중남미의 국가에서는 채무자들이 부패와 비리에 찌든 자국의 변호사보다 미국변호사를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전에도 중남미 국가의 추심을 의뢰한 적이 있는 파트너였기에 의뢰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의 로펌에 의뢰하게 됐고 3개월 만에 전액 회수하게 됐습니다.
매우 낯선 나라에서 적은 금액이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회수한 경우입니다.